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이것은 헛된 기대일 뿐이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시민들이다. 공화국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것과 똑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 존엄한 존재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가 무언인지 잘 아는 시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 깨어있는 시민들이 훌륭한 국가를 만든다.
유시민 - 국가란 무엇인가 중
2014년 9월 13일 토요일
2014년 9월 6일 토요일
자유의 언덕
'자유의 언덕'은 다시 한번 북촌을 배경으로 하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다.
특유의 술자리 씬과 담배 피는 장면은 여전하다.
이번에는 이전 작들과 조금 다른게 영화에서 말하려는 부분은
비교적 잘 드러나는 반면
엔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려 갸우뚱거리게 된다.
영화에 등장했던 가게들은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인 경리단 댄디핑크를
제외하고 모두 북촌에 있다.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실존주의
실존주의(實存主義)는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이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각자는 유일하며, 자신의 행동과 운명의 주인이다.
...
제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는 허무감과 좌절감이 팽배했다. 그 결과 인간의 이성, 역사의 발전, 신의 권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겨났다. 전쟁의 체험,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고발 및 증언 앞에서 허망과 절망을 철학적, 문학적 고찰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절망감을 지성으로 극복하고 논리화하는 과정에서 실존주의 철학이 생겨났다.
이렇게 우발적이고 허망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은 자신의 자유에 모든 것을 걸고, 이성으로 절망을 인식해야했다. 이성을 가진 인간과 비합리적인 세계 사이 사이에 있는 모순이 부조리인데, 이것을 논리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즉 반항하며 허무감을 이겨내고 휴머니즘을 재건하게 된다.
...
‘실존’이란 말은 이들의 사고양태(思考樣態)나 표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으나, 공통된 사상은 인간에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실존은 ‘인간’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니힐리즘이 ‘자아’를 강조한 나머지 세계를 부정하기에 이르는데 반하여, 같은 ‘자아’의 실존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자아’와 세계를 연결지으려고 노력한다. 즉, ‘내가 있다’고 하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나’를 세계와 연결지음으로써 그 전제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논리가 역전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파악할 수 있는가가 추구된다.
http://ko.wikipedia.org/wiki/%EC%8B%A4%EC%A1%B4%EC%A3%BC%EC%9D%98
...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을 따르고, 초월적 가치보다는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며, 우리는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앞서 살고 있으니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실존주의적 삶에 대한 자각은 결국 '시작과 끝은 아무것도 아니다'를 의미한다. 시작은 끝 너머에 존재하고 끝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된다.
중요한 것은 시작과 끝을 붙잡아주는 '과정'이다. 탄생이라는 시작과 죽음이라는 끝의 사이에는 늘 삶이라는 과정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탄생도 죽음도 아닌 '삶' 그 자체다. 이는 결코 허망한 회의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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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는 허무감과 좌절감이 팽배했다. 그 결과 인간의 이성, 역사의 발전, 신의 권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겨났다. 전쟁의 체험,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고발 및 증언 앞에서 허망과 절망을 철학적, 문학적 고찰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절망감을 지성으로 극복하고 논리화하는 과정에서 실존주의 철학이 생겨났다.
이렇게 우발적이고 허망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은 자신의 자유에 모든 것을 걸고, 이성으로 절망을 인식해야했다. 이성을 가진 인간과 비합리적인 세계 사이 사이에 있는 모순이 부조리인데, 이것을 논리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즉 반항하며 허무감을 이겨내고 휴머니즘을 재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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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이란 말은 이들의 사고양태(思考樣態)나 표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으나, 공통된 사상은 인간에 있어서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실존은 ‘인간’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존주의는 니힐리즘이 ‘자아’를 강조한 나머지 세계를 부정하기에 이르는데 반하여, 같은 ‘자아’의 실존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자아’와 세계를 연결지으려고 노력한다. 즉, ‘내가 있다’고 하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그 ‘나’를 세계와 연결지음으로써 그 전제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하는 논리가 역전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먼저 파악할 수 있는가가 추구된다.
http://ko.wikipedia.org/wiki/%EC%8B%A4%EC%A1%B4%EC%A3%BC%EC%9D%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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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을 따르고, 초월적 가치보다는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며, 우리는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앞서 살고 있으니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실존주의적 삶에 대한 자각은 결국 '시작과 끝은 아무것도 아니다'를 의미한다. 시작은 끝 너머에 존재하고 끝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된다.
중요한 것은 시작과 끝을 붙잡아주는 '과정'이다. 탄생이라는 시작과 죽음이라는 끝의 사이에는 늘 삶이라는 과정이 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탄생도 죽음도 아닌 '삶' 그 자체다. 이는 결코 허망한 회의주의가 아니다.
배순탁 음악작가
음악작가라는 직업. 막연한 동경에서지만 '음악 + 작가'의 조합은 근사하다.
지난 토요일 오후 3시, 비긴 어게인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신촌 CGV에서 갖었다.
영화가 끝난 후 배순탁 작가님께서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해박한 음악 지식과 생각하는 방식에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개인의 취향에 대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데 생각나는대로 옮겨적어 본다.
...
'개취'니 '취존'이니 하는 근거없는 취향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취향을 드러내려면 본인이 갖은 취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갖은 취향을 알아내 반복하고, 습관화하면 '안목'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
좋은 '안목'을 갖는다는 것, 보는 행위를 가진 사람의 목적지가 아닐까.
지난 토요일 오후 3시, 비긴 어게인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신촌 CGV에서 갖었다.
영화가 끝난 후 배순탁 작가님께서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해박한 음악 지식과 생각하는 방식에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개인의 취향에 대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데 생각나는대로 옮겨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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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취'니 '취존'이니 하는 근거없는 취향은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취향을 드러내려면 본인이 갖은 취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갖은 취향을 알아내 반복하고, 습관화하면 '안목'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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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안목'을 갖는다는 것, 보는 행위를 가진 사람의 목적지가 아닐까.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대망, 퇴계의 경 사상.
도쿠가와 막부를 250년 동안 이어져오게 한 바탕이 된 것은 유학 특히 그 주류인 주자학을 독특하게 계승발전시킨 퇴계의 '경'사상으로,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타산적인 동기로 행동하는 일'을 강하게 부정하고 자신을 늘 갈고 닦으며 무슨 일에고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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