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30일 수요일

더 테이블 (The Tabl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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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이 내려가기 전에 오늘 이 영화를 봤다.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겨우겨우 볼 수 있었는데 방법은 비밀이다.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건 정유미, 정은채가 출연해서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찾아 읽듯이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챙겨듣는다. 내겐 김연수 작가가 그렇고, 가수 이승열이 그렇고, 또 정유미가 그렇다.

김종관 감독은 모르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난 후 찾아보니 '최악의 하루'를 만들었던 분이더라. 재밌게 봤었는데 극장에서 봤던게 아니었어서 기억하지 못했나보다. 흥미로운건 이 분이 정유미의 데뷔작이라 알려진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감독하신 분이라는거.. 13년이 지났다.

영화는 70분으로 짧은 편이다. 짧은만큼 등장인물의 수도 적고 비교적 줄거리도 단순하다. 인적이 드문 서촌의 한 카페의 같은 자리에서 두 사람씩 네쌍이 시간을 나눠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는데 별것 아닐것 같은 그 대화 내용이 썩 재미있다. 짐 자무쉬 '커피와 담배'가 떠오르지만 대화 내용은 이 영화가 더 극적이라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다. 귀가 쫑긋거릴 정도로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들. 그럼에도 카페의 여주인은 본인의 일만 묵묵히 해나간다. 들리는데 모른척했을 수도, 아니면 관심 자체가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극중 카페 주인보단 대화를 생생히 들을 수 있는 관객이고, 똑같은 장소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해서,, 대화 간 연관성과 의미를 찾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각각의 대화는 서로 연관이 없고.. 애초에 그런 의도로 만든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영화 자체의 매력은 클로즈업된 등장 인물의 표정과 시선. 제스쳐. 그런것들에 있다. 최소화된 인물과 공간, 15분 내외의 네가지 대화가 덤덤하게 쭉 이어지는 영화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나에겐 지루한 영화가 아니어서 이렇게 짤막하게나마 메모를 해둔다. 나른한 시간에 혼자보기 좋았던 휴식같은 영화였다. + '전성우'라는 배우가 나오는데 벌써 유명하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 영화로 꽤 주목받으실 것 같다.

2017년 8월 17일 목요일

파이콘 2017 2일차

둘째 날엔 전날에 비해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 심지어 특정 인기 세션은 자리가 부족해 서서 듣거나 앉아서 들어야 했다. 때문에 첫날 따로 확인하지 않았던 입장 확인용 목줄 소지 여부를 둘째 날엔 어느정도 체크하기도 했다.

출발하기 전에 애기랑 좀 놀아주느라 20분 정도 늦었다. 첫번째 들었던 세션은 스마트 스터디 CTO께서 발표하셨는데 gRPC Framework로 구현한 오델로 게임 사례를 예로 든 RPC Framework에 대한 내용이었다. Thrift와 gRPC 중 저울질하다 gRPC로 구현이 되었는데 깃허브에 올라온 코드를 보면 제조 쪽에도 적용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과제에서도 공통의 IDL을 정의해놓고 이종 언어간 바이너리 통신을 하니까 학습하는데도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게임 쪽에는 Unity에 대한 RPC Framework 지원이 아직 부족한 상태라 적합하진 않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려주셨다.

그 다음 들었던 세션은 Django 관련 프로그램과 처음부터 알아보는 웹 크롤러 등이다. 그만 퇴근합시다!라는 업무 자동화 세션도 들어갔었는데 별로 도움이 안되는 내용이라 중간에 나올 수 밖에 없었고, 덕분에 우연히 들어가게된 얼렁뚱땅 파이썬 대소동 프로그램이나 Django for mobile applications 프로그램에서 많은 팁과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양일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알아보는 웹 크롤러' 였다. 우아한 형제들 인턴으로 근무하고 계신 개발자께서 발표하셨는데 해보고 싶단 생각만하고 손도 대지 않고 있던 크롤링에 대해서 알기쉽게 잘 설명해주셨다. 몇가지 사이트를 대상으로 데이터를 긁어와보면 일상에 도움이 되는 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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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첫 유럽 여행을 다니는 바쁜 한국인처럼 부지런히 발표장을 옮겨다녔는데 2일차 오후가 되선 약간의 회의감과 허무함이 몰려왔다. 모르는걸 들으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요즘 내가 여유가 부족해서인지 어딘지 불편했다.. 뭐 실망했던 세션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탓이다. 내년에 참가하게 된다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질문도 해보고 :D

어쨌든 불편함과 내가 느꼈던 위기감은 나만의 문제이고, 파이콘이란 행사 자체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파이썬에 애정을 가진 개발자가 참 많다고 느끼기에 이 컨퍼런스는 꽤 오랜 사랑을 받을 것 같다. 여기서 여러 IT 기업의 역할도 중요한데 이런 비영리 행사에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단순 지출이 아니라 기업의 브랜딩이나 이미지, 채용 등등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파이콘 2017 1일차

올해 파이콘은 코엑스 그랜드블룸에서 열렸다. 등록은 아홉시부터 시작했다. 첫 참석이다보니 아침부터 분주했고 설레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등록대에서 이메일과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알려주면 네임태그와 가방, 그리고 후드티 교환권을 준다.

올해는 Back to the Basic이라는 키워드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행사장 전면에는 Back to the Basic 네임 월이 있었는데 거기엔 이번 행사를 후원하거나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렵지 않게 내 이름도 찾을 수 있었다.


행사는 12일~15일까지 진행되었고, 발표 세션은 12일과 13일에만 열렸다. 발표 희망자가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25분짜리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발표자에게 할애된 시간이 너무 짧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키노트는 스포카에 재직중인 홍민희 개발자와 스마트스터디 대표 박현우 개발자가 진행하였다. 주제는 각각 다른 언어들이 파이썬에 주었던 영향과 파이콘 행사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생각과 고민에 대한 것이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 무엇보다 파이썬이라는 언어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케이블 영화 채널 편성표 수집,  Django(+Rest Framework) In Depth, Python/AWS를 이용한 쇼핑몰 서비스 구축 등의 발표 프로그램을 들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내용에 대해선 반가움이, 어렵게 다가오는 내용에 대해선 위기감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개념이 계속해서 나오니 개발자로 살아가는건 피곤한 일이다.

지나간 일이지만 전체 프로그램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pycon.kr/2017/program/schedule/